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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얼룩진

한예종-돌곶이의 장소성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 캠퍼스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일대에 위치해 있다. 재학생들은 돌곶이라고도 많이들 부른다. 돌곶이라는 지명의 어원은 재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돌곶이역 7번 출구와 8번 출구 사이에 위치한 돌곶이 유래비에서 알 수 있다. 그에 따르면:

“돌곶이”란 말은 이 곳 지형이 돌을 꼬치에 꿰어 놓은 것 같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북한산에서 남동쪽으로 뻗어내린 오패산의 한 지맥이 높이 141m의 천장산을 이루는데, 그 동쪽 지맥은 조선왕조 20대 경종(1720~1724)의 왕릉인 의릉을 감싸고 있다.
이 천장산의 지맥에는 검정돌들이 박혀있고 그 모양이 마치 수수밭떡이나 경단을 꼬치에 꿰어놓은 형국이다. 그래서 이 지역을 “돌곶이” 마을이라 부르게 되었고, 뒤에 이것이 한자로 바뀌어 석관동(石串洞)이 되었다.


조선 제19대 왕 숙종과 그 유명한 희빈 장씨 사이에서 태어난 경종은 어려서부터 병약했으며 4년의 짧은 치세 내내 노론과 소론의 격렬한 정쟁에 치이다가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불과 3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2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부인 선의왕후 어씨와 함께 이곳 돌곶이에 묻혔다. 그들이 묻힌 지 240여 년이 지나 군인들이 무자비하게 쳐들어와 무덤을 파헤쳐 건물을 짓고 연못과 계곡을 만들어 자신들의 놀이터 삼았다. 대한민국의 20세기를 지배한 군사정권의 그 악명높던 안기부(혹은 중앙정보부) 해외파트가 자리잡은 것이다[각주:1]. 문화유산과 정보기관이 위치해 있다는 이유로 90년대까지 고도제한이 있었고[각주:2],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왕과 왕비 그리고 수많은 국가폭력 희생자들의 넋이 모여 있는데다 근처 이문동에는 연탄공장들이 위치해 있어[각주:3] 바람이 조금이라도 강하게 부는 날이면 온동네에 석탄가루가 날리던 서울의 불모지에 느닷없이 예술학교가 들어섰다. 첫 문화부 장관이었던 이어령은 자신의 임기 마지막 날이었던 1991년 12월 19일 국무회의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령을 발표하며 “지금 예술학교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엘리트가 아니고, 사실은 불쌍한 아이들입니다. 여기 못 들어오면 은행원, 공무원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닌 거죠. 하나님이 실수해서 잘못 만든 사람들이에요. 그러니 도저히 그대로 내려보낼 수 없어서 하나님의 눈곱 하나 떼어줘서 그림 그리게 하고, 귀지 하나 후벼 넣어줘서 음악가가 되게 한 겁니다. (…) 석유와 가스 나오는 곳을 천재적으로 아는 아이가 있으면 동자부에서, 모내기 신동이 있으면 농림부에서 학교를 만들겠지만 그런 아이는 없지 않습니까. 문화에는 모차르트 같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인생 낙오자로 만들지 않으려면 학교를 세워야 합니다.”[각주:4]라는 연설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돌곶이는 한마디로 불쌍한 사람들이 모인 장소다.

이 독특한 장소에 위치해 있기 때문인지 한예종은 단순한 대학 캠퍼스 그 이상의 기능을 한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한예종 석관캠은 돌곶이 지역민들의 공원 혹은 공공장소로서 기능하고 있다.

2020년대를 갑작스레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은 인류의 일상 개념 자체를 뒤바꿔 놓았다. 당연하게 여기던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모일 수 없다. 대면은 그 자체로 껄끄러워졌다. 많은 공공장소가 폐쇄되었다. 개인의 파편화는 막을 수 없는 경지에 다다랐다.
그래도 모일 사람은 모인다. 만남을 인간의 삶에서 삭제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사람들은 모이고 싶은데 모일 장소가 없다. ““여기 말곤 시간 보낼 곳이 없다” 문 닫힌 탑골 ㅣ찾는 노인들”(조선일보, 2021.06.19.) 기사는 특히 노인의 모임과 공공장소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지역민들, 특히 노인들에게 공원은 소중하다. 굳이 돈을 내지 않고도 내가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고, 언제라도 가면 사람들이 모여 있다.

조금만 높은 곳에서 돌곶이 일대를 둘러보자. 온통 빽빽한 빌라촌만 보일 뿐 개활지를 찾기 힘들다. 자연스레 지역민들은 산책을 하고 서로 만나기 위해 한예종 캠퍼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석관동 일대의 위성사진
한예종 정문 근처의 풍경. 이곳을 시작으로 캠퍼스 전체에 걸쳐 지역민들이 모인다

 

교내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의 게시글.


그러나 팬데믹 초기 위와 같은 논조의 글이 에브리타임에 우후죽순 등장하기 시작했다. 짧은 글이지만 엄청난 분노(?)와 엘리트적 특권 의식이 드러난다. (글쓴이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혹시 이 글을 읽게 된다면 부디 자신의 행적을 반성하기를 바란다.)


한예종 캠퍼스 내에 놓여진 안내 팻말.

천장산은 수십년 간 정보기관이 위치해 있었기에 일반인에게 출입 금지구역이었다. 그러던 2005년 산책로를 조성하여 겨우 시민들에게 공개된 것이다. 위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한예종 캠퍼스는 엄연히 천장산산책로와 이어져 있으며 지리적 요인 상 필연적으로 지역민들에게 공원 내지 공공장소로서 기능할 수밖에 없다. “천장산이 학교소지”라는 위 학우의 말은 이렇게 쉽게 반박된다. 이 지역을 관할하는 성북구청, 동대문구청, 문화재청, 심지어 한국예술종합학교까지 모두 국가기관인데 소유 여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설사 사립대학이면 몰라도(사립대학이라고 해서 위와 같은 특권의식이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국립대학이며 자연히 국민의 복리를 증진시키기 위해 봉사할 의무가 있다. 캠퍼스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여기서 잠시 장소라는 개념에 대한 깊은 논의를 해보자.


장소는 주체에 의해 구획되고 분할되고 점유된 공간이다. 공간이 객관적인 것이라면 장소는 주관적이다. 주체의 개입이 공간과 장소의 차이를 만든다. 공간은 누구의 것도 아니지만 장소는 주인이 있다. 이곳은 나의 장소이고, 그곳은 너의 장소이며, 저곳은 우리들의 장소이다. 객관적인 것으로서의 공간은 내버려두면 스스로 투명해져 무한공간으
로 변해가지만, 주체화된 공간으로서의 장소는 그럴 수 없다. 누군가에 의해 울타리 쳐지고 점유된 공간으로서의 장소는 주체에 의해 설정된 경계나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각주:5]



서영채에 의하면 “공간(Space)이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며 공적이라면, 장소(Place)는 주관적이고 고유하며 사적이다”. [각주:6] 말하자면 “장소는 삶의 구체적인 현실 속에 있는 것”[각주:7]이며 “한 개인의 고유성(singularity)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각주:8]이러한 논지를 따르자면 한예종-돌곶이는 공공장소라는 점에서 공간에 가까울 수도 있겠으나 실은 장소에 더욱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이곳은 “두려움의 대상”인 “텅 빈 공허로서의 순수한 공간”[각주:9]이라기 보다는 사람들이 삶을 살아내는 곳이다. 한예종-돌곶이는 단순한 학교 캠퍼스가, “어딜 감히” 외부인에게 침범 받아서는 안 되는 엘리트 외부인들의 성역이 아니다. 수천 수 만년 전부터 이 땅에서 지내온 천장산의 동물들과 산신들부터 시작하여 수백 년 전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왕과 왕비, 수십년 간 국가폭력의 희생자들, 예술학교의 학생들, 그리고 지역민들까지 모두의 발길이 스쳐 지나가며 숨결을 남긴 장소. 우리가 익숙하게만 생각했던 이곳을 다종다양한 주체들의 손길과 발길이 묻어난 장소로서 새롭게 생각하고 바라보기 시작해보자.


우리는, 어둡고 밝은 면이 있고 제각기 높이가 다르며 계단처럼 올라가거나 내려오고 움푹 패고 불룩 튀어나온 구역과, 단단하거나 또는 무르고 스며들기 쉬우며 구멍이 숭숭 난 지대가 있는, 사각으로 경계가 지어지고 이리저리 잘려졌으며 얼룩덜룩한 공간 안에서 살고, 죽고, 살아간다.[각주:10]


돌곶이포럼 김림 씀.

  1. 흔히 반정부 인사들을 잡아넣어 고문하던 곳은 ‘남산’이긴 하지만, 이곳에서 고문이 아예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1960~70년대 심심하면 공안정국을 조성하기 위해 조작된 수많은 해외 간첩단 사건의 진행은 모두 해외파트에서 이루어졌다. “한예종 학생들은 알까, 여기서 사람 고문했다는 걸”, 오마이뉴스, 2019. 04. 14. 참조. [본문으로]
  2. “안기부 이전으로 이문동일대 고도제한 폐지”, 한국경제, 1994. 10. 01. 참조. [본문으로]
  3. “[2003 여기 이 사람] 1. 이문동 연탄공장 직원들”, 중앙일보, 2003. 10. 17. 참조. [본문으로]
  4. ““호흡기 떼면 죽어” 이어령이 30년전 몰래 밀어넣은 안건은”, 중앙일보, 2022. 01. 23. 참조. [본문으로]
  5. 서영채, 『풍경이 온다』, 나무나무출판사, 2019, 275쪽. [본문으로]
  6. 같은 책, 280쪽. [본문으로]
  7. 같은 책, 276쪽. [본문으로]
  8. 같은 곳. [본문으로]
  9. 같은 책, 21쪽. [본문으로]
  10. 미셸 푸코, 『헤테로토피아』, 이상길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4, 12-13쪽.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