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종 캠퍼스와 그 주변의 석관동 일대에는 공기처럼 주변을 떠다니는 하나의 분위기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괴담의 분위기이다. 석관동 주택단지 곳곳에는 무당들의 적기와 백기가 걸려있고, 천장산에는 오래된 철조망과 부서진 콘크리트 계단, 이제는 쓰이지 않는 경계초소가 버려져 있다. 왕의 무덤이라는 문화재 앞에는 ‘옛 중앙정보부 자리’라는 푯말이 땅에 박혀 있으며 (그 중앙정보부였던)학교의 옛 건물들과 (그 이름부터가 괴담인)음지못에는 목격담의 형태를 띠는 괴담들이 역사의 잔여물처럼 쌓여있다. 누적된 괴담은 씻겨 사라지지 않고 택시 기사가 승객에게 건네는 농담, 블로그의 기담 모음집 등을 통해 재생산/유지되며 그 수명을 연장한다.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황량하고 차가운 캠퍼스의 공기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굴뚝 등, 우리의 감각에 닿는 물질화된 기표들이 괴담의 존재를 환기시킨다.
연장되고 물질화된 괴담의 분위기는 지역의 풍경과 하나의 덩어리로 붙어 존재하며 그렇게 대기로서 주민들/학생들 사이에 떠다닌다. 괴담의 존재가 공간 정체성의 일부에 편입되어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괴담의 존재함에는 반드시 유령이 함께한다. 혹은 유령이 선재하기에 괴담이 따라온다. 유령들은 어두운 새벽에 문득 문을 두드리거나, 조명설치대 사이를 거꾸로 걸 어다니거나, 오래된 건물 어딘가에 자신들만의 미로같은 공간을 만들며 등장한다. 그들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장소에서 서서히 나타났다가 서서히 사라진다. 마치 디졸브처럼. 이들 유령과 괴담은 지금 실재하는 공간과 과거 실재했던 죽음들 사이에 발을 걸친 채 서있다.
유령과 산 자 사이에는 거리가 존재한다. 두 가지 층위의 거리가. 유령들은 죽음을 경험한 자들이기에, 혹은 죽음 그 자체이기에 너무나 쉽게 공포나 혐오의 대상이 된다. (혹은 경외의 대상이 된다.) 이 공포와 혐오와 경외는 일종의 ‘감정의 아우라’가 되어 유령들의 위치를 고정 시키고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거리 좁히기를 방해한다. 생산된 거리는 다시금 우리의 인식 에서 공포의 이미지를 생산하고, 공포는 또 다시 거리를 늘린다. 거리의 연장과 공포의 심화 는 서로 맞물리며 재생산의 악순환을 반복한다.
그리고 이 감정의 거리는 시간의 거리와 짝을 이룬다. 유령/죽은 자는 과거의 (죽은) 존재 들이기에 현재/산 자들과 끊임없는 단절의 상태를 유지한다. 기실 멀리 떨어진 별의 광선이 억겁의 시간을 거쳐 지상에 도달했을 때 이미 그 별은 사라진 다음인 것처럼, 죽은 자들은 괴담(혹은 역사)이라는 통로를 통해 산 자들에게 다가가지만 산 자들이 그 존재를 인지했을 때는 이미 죽은 다음이다. (환상인 괴담과 대척으로 여겨지는) ‘실재’가 담긴 푸티지 사진을 통해 그들을 만나더라도 단절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강화된다. 사진(혹은 괴담의 텍스트)의 폐쇄회로로 인해 정지된 순간은 우리에게 그 순간이 소멸되었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울 뿐이다.
이런 유령에 대한 감정적인 기괴함과 시간적인 단절은 다시 공간을 떠다니는 분위기와 만난다. 괴담은 유령/죽은 자를 감정으로서 거리를 늘리고, 과거로서 분리-단절하고, 분위기로서 붙잡아놓는다. 이 구조 속에서 공간의 표면 바로 아래에 괴담이 깔려있지만 정작 그 과거(의 본질, 유령)는 섬광처럼 스쳐지나가기만 할 뿐이다.
돌곶이포럼은 지역과 괴담, 역사와 그 재현 사이에 발생하는 이런 괴리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고, 그 고민의 일환으로 지역의 괴담-분위기에 접근하며 한예종 석관캠퍼스의 괴담들과 지역 민속신앙, 실제 역사적 사건 등을 바탕으로 일종의 서사의 재구성을 시도했다. 파편화된 점들로 존재하는 괴담들을 간단한 서사를 통해 이어보고, 이를 통해 괴담을 공포와 혐오의 거울이 아닌 유령들과의 관계를 다시 맺을 수 있는 통로로,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방법으로 재사유 해보고자 함이다.
공포와 과거의 존재인 유령이 ‘산 사람이 존재의 문지방 맞은편에 서 있는 혼령 혹은 죽은 자의 소외된 영혼의 살아 움직이는 이미지가 되면’1, 유령과 산 자가 맺는 도덕적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하게 된다. 본고는 그 관계의 전환, 유령과의 친밀한 교류를 위한 시도이다. 유령이 세상과 어떻게 감응하는지, 역사의 어떤 위치에 이들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지, 현실(혹은 현재)의 세계에 이들이 어떠한 모습과 방식으로 등장하는지 묘사해보고자 한다.2
그럼 이제 잠시 시계를 돌리고 시점을 바꿔보도록 하자.
천장산天藏山. 하늘이 숨겨놓은 산. 예부터 한양 땅 안에서 특히나 기운이 강하기로 유명한 이 산에는 산신 할머니가 터를 잡고 있다. 언제부터 산의 신으로 지내왔는지는 아무도 기억하 지 못한다. 갑진년과 경술년 왕과 왕후가 차례로 산 밑 릉에 묻힐 때도 할머니는 산을 지키고 있었다. 대왕대비도 혼백으로서 할머니에게 예를 표하고 산중 여우에 토끼에 고양이도 대가리 를 조아린다. 산 아래 백성들은 상달이면 소를 잡고 제를 올린다. 할머니는 산이고 산은 할머니다. 꽃이 핀들 눈이 내린들 할머니는 산에 있다. 왕릉으로 인해 산에 들어가기가 어려워지 면 사람들은 산 아래로 당을 옮겨 그녀를 모신다. 절기가 수백 번을 돌고 나라 온 땅이 어지러워도 할머니는 거기 있다. 사람들은 할머니를 기억한다.
어느 날엔가 전쟁도 끝났건만 총검을 찬 군인들이 북악산과 남산 일대를 점령하더니 천장산에도 무례한 외부의 인간들이 들어온다. 쌍릉을 멋대로 점령하고 산에 철조망을 친다. 땅과 나무를 헤집고 건물들이 세워진다. 건물에는 냉기가 흐르고 요사한 기운이 그득하다. 그것이 악의인지 살기인지. 혹은 열의인지 또는 그 아무것도 아닌지 알 수가 없다.
남산 국사당 신장들이 강제로 인왕산으로 터주를 옮기고 전국 곳곳에서 사당들이 재가 되었을 때도 천장산 도당은 불타지 않았었다.3 그러나 이 건물의 인간들과 관료들은 산을 둘러싸 폐쇄하면서 할머니의 당마저 철조망 안에 가두려 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도당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분노하신 할머니가 관료 한 명의 입을 돌려놓으니 놀란 그들은 도당 없애기를 포기한다.4 당집은 그리 지켜냈으나 천장산은 이미 돌려놓을 수 없다. 이제 꺼림칙한 건물들만이 냉기를 흘리며 산을 더럽힌다.
건물들이 들어선 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천장산 일대에 이름 없는 귀신들이 눈에 띄게 많아진다. 아무리 산이 더럽혀진들 터주 잡은 산신이 버젓이 존재하는데 잡귀들이 설치다니. 노한 할머니가 건물 주위를 서성이는 귀신들을 잡을 생각으로 산 위에서 내려다보니, 그들의 꼴이 무언가 심상치가 않다.
뒤통수가 터져 백골이 드러나고 코와 입으로 허파에 찬 물을 쏟아내고 굶어 죽고 목뼈가 부 러져 머리가 좌우로 덜렁이고 가슴 한복판에 구둣발 자국이 움푹 들어가고 뼈마디가 부서진 귀신들. 죽은 장소와 방법이 제각각인 귀신들이 천장산 자락에 모여든다. 고통과 원한에 사무 친 이들이다.
할머니는 의아했다. 원치 않은 죽음을 맞은 혼령에게 원한이 없을 리는 만무하지만, 그 많고 다양할 귀신들의 원한을 한데로 묶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어찌 되었든 할머니는 그들에게 다가가 매섭게 호통친다. 산속 나무며 돌멩이며 개미 새끼며 모두 얼어붙는다. 이 산에 누가 있는 줄 알고 이리들 멋대로 돌아다니느냐.
귀신들은 할머니를 바라본다. 성별도 나이도 모습도 그들의 죽음만큼이나 제각각이다. 그리고 입을 연다. 산신령님. 산신령님. 우리 이야기 좀 들어주시겠소. 왕릉과 영산 사이를 떠도는 원귀들이 산신에게 이야기를 들어달라니. 산신은 그만 어이가 없어 화를 잊는다.
너희는 누구냐.
저희는 이곳의 관료들과 그 수하들에게 목숨을 잃은 혼령들입니다.
이 근방에서 이리들 목숨이 끊어진 것인가.
여기서 죽은 이도 있지만 우리는 이 땅 곳곳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나는 옥인동 독방에서 매를 맞다 죽었습니다. 저자들은 날 죽인 놈들의 대가리의 대가리요. 어찌 귀신같이 그놈들 대가리가 있는 곳을 알았더냐.
귀신 같은게 아니라 귀신이외다.
귀신이면 차사를 따라 저승에 가거라. 아니면 죽은 자리에 뿌리를 박든, 고향에 돌아가든 하 지 왜 이곳까지 왔더냐.
우리는 편히 앉을 고향도 죽은 자리도 없습니다.
이름 없는 잡귀들이 어딜 가겠소. 억울함에 몸부림치며 떠돌다 보니 이곳까지 온 거요. 이곳 뿐만 아니라 남산도 지금 우리 같은 자들이 넘쳐날게요.
할머니는 잠시 말을 멈춘다. 그리고 건물들을 바라본다. 저들이 내 산을 뒤집더니 그것도 모자라서 팔도 중생들을 이리 죽이고 다니는구나. 이 많은 원귀들이 붙었으니 저들은 진즉에 사달이 났어야 맞겠지만 나라를 등에 업은 기세가 너무 강하다 보니 귀신들의 원념마저 저들 을 어찌하지 못한다. 저들의 권세는 더욱 강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원한은 더 깊어진다. 가뜩이나 할머니와 왕릉 덕에 터가 강한 곳인데 자꾸만 땅에 기운이 더 쌓인다. 그 렇다고 억지로 이 원귀들을 어찌할 도리 또한 없다.
할머니는 한참을 생각하다 귀신들을 보며 말한다. 내 이곳을 내어 줄 테니 산에는 올라오지 말거라. 그리고 원한에 잡아먹히지도 말거라. 그러면 내가 네놈들을 잡아 없앨 수밖에 없다. 한숨을 쉬며 할머니는 다시 산으로 올라간다.
그렇게 의릉과 천장산 사이의 공간은 나라와 안기부에 희생당한 이름 없는 귀신들의 자리가 된다. 무명잡귀의 공동체. 서로가 서로를 애도하며 겨우 악귀가 되지 않고 정신을 유지한다.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못하기에 그들만이 스스로를 기억한다. 이따금 서울서 아주 먼 땅에 서 죽은 원귀들과 아주 오래전에 죽었지만 누구도 그 사실을 알려 하지 않는 무명귀들도 소문 을 듣고 그들을 찾아와 모인다.
또 그렇게 수십 년이 지난다.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던 안기부는 떠나고, 의릉과 천장산이 개방된다. 안기부가 버리고 떠난 땅 귀신 공동체의 공간에 학교 하나가 생긴다. 살 아있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사람들과 귀신들은 종종 마주친다. 그럼에도 아직 귀신들은 기억 의 바깥에 존재한다.
개방된 천장산에도 사람들이 찾아온다. 여전히 할머니를 기억하는 마을 사람들은 산에 오르면 가볍게나마 그녀에게 인사를 드리고 매년 상월 치르던 도당제도 자리를 옮길지언정 계속 이어진다.5
그 악독했던 안기부의 관리들은 사라졌지만 그들 건물은 흔적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 흔적 들에 귀신들 또한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다. 귀신들은 이제 학교 안에서 학생들과 함께 살아간 다. 어둔 밤 학교 곳곳 옛 안기부의 자리에서 학생들은 귀신과 마주치고 공포에 질리곤 한다. 그 경험들이 쌓여 귀신들은 공포와 불안의 존재로서 괴담 안에만 존재하게 된다. 할머니는 그런 귀신들이 마음에 걸렸다. 성불까진 못하더라도 귀신들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그 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기를 바랐다. 이 무명잡귀들의 공동체와 사람의 공동체가 서로를 거울 처럼 비추며 역사의 고난을 함께 나누길 원했다.
어느 날 천장산의 치마바위를 찾아온 만신 한 명이 할머니의 바람을 알게 된다. 그녀는 산신께 정중히 인사를 올리고 귀신들을 위한 파경을 외운다. 파경은 조금이나마 그들을 위로한 다.
천장산 밑. 온통 회색빛의 작은 학교. 그나마 작은 위로가 생긴 이 곳에서 귀신들은 산 자 들과 교류하길 바라며 계속 살아간다.
처녀 죽은 골무귀 총각 죽은 몽취귀
어떤 잡놈 불알통이 다 터져 죽은 귀야
어떤 잡년 물똥을 화르륵 싸고 죽은 귀야
대공분실 수조 물에 코를 박고 죽은 귀
볕 못보고 밥 못 먹어 굶어죽은 아사귀
공비 누명 범죄귀며 종신징역 옥사귀야
홍로점화 전깃불에 불타 죽은 화사귀야
인간중생 죄도 없이 목봉맞아 죽은 귀
총에 맞아 타살귀 칼에 맞아 금사귀
비실비실 미혼귀며 무자무손 무호귀
진 것은 먹고 가고 마른 것은 가지고 갈 제
너도 먹고 물러나고 나도 잡숫고 물러간다
너도 잡숫고 물러가고 나도 먹고 물러난다6
돌곶이포럼 이채훈 씀
- <귀신 간첩 할머니 – 근대에 맞서는 근대> p52, 권헌익 [본문으로]
- 괴담에 대한 작업을 진행하며 우리는 공백들을 자주 마주칠 수 있었다. ‘괴담조차 존재하지 않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야기조차 부여되지 않는 무명잡귀들은 살아있을 때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나? 존재에 대한 부재의 관계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기억의 비대칭적 차원이다. 박경태 감독의 이야기를 빌려오자면, 귀신의 이야기와 괴담은 시민성의 지위를 가진 자들에게 주로 부여된다. (“지금까지 만들어졌던 수많은 귀신 이야기들이 사실은 시민과 백성의 이야기였던 거다. 시민의 죽음이어야 사람들이 공감하고 가슴 아파할 수 있는 거지.” - BIFF 2019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김동령·박경태 http://reversemedia.co.kr/article/248) 살아있을 때 이방의 위치에 존재한 이들은 죽은 다음에는 더 주변부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이를 극복하고 더 멀고 희미한 별로 존재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본문으로]
- 인왕산 국사당은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 여러 호신신장들을 모시던 사당으로, 원래 남산에 위치했으나 일제 강점기에 인왕산으로 옮겨졌다. 국사당뿐만 아니라 전국의 여러 사당들이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며 이전되거나 파괴되었다. 석관동 도당의 경우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최소한 광복 직후에도 제를 지냈다는 증언이 있는 것으로 보아 강점기와 전란기에도 무사했거나 혹은 그 이후에 피해를 곧바로 복구한 것으로 보인다. (자문 : 성북문화원) [본문으로]
- “전에 구에서 여기(석관동 도당)를 없애고 나라 땅으로 만들려고 집어넣었던 적이 있는데, 그리고 나서 구청장이 입이 돌아갔어. 그래서 무서워서 그냥 두기로 하니깐 다시 돌아왔대.” - <서울 마을굿의 계열과 의미구조> p91, 권선경 [본문으로]
- 현재 있는 도당은 원래 도당이 있던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건설업체에서 새로 단장하여 지어준 것이다. 당집 등은 단장되었으나 과거 넓었던 도당 터는 상당 부분 축소되었다. (출처 : https://ncms.nculture.org/faith/story/1342#//) [본문으로]
- 김금화의 조상굿 중 ‘파경’을 번안. - <김금화의 무가집> p204, 김금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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