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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얼룩진

얼룩과 집

이사

 석관동으로 이사를 왔다. 통학을 위해 지하철에서 1시간 20분을 보낼 자신이 없었고 부모의 도움을 최소한으로 하며 내 삶을 일궈보고도 싶었다. 부동산 어플을 며칠 들여다본 끝에 마음에 드는 원룸을 찾았다. 인기가 많은 집이라는 부동산 주인의 말에 바로 계약금을 넣고 전세 대출을 받았다. 그러나 급하게 계약을 한 탓인지 이주한 뒤에야 몇 가지 문제들이 발견됐다. 우선 침대 프레임이 몹시 덜컹거렸고 매트리스에서는 꿉꿉한 냄새가 났다. 날이 쌀쌀해지면서 곳곳에 결로가 생기기도 했다. 이 결로가 매트리스에서 나는 곰팡이 냄새의 원인인 것 같았다. 바닥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얼룩이 있었다. 남색 잉크가 화장실 앞과 침대 아래 바닥 곳곳에 찍혀 있었다. 파이프나 작은 가구 아래 묻어있던 물감이 바닥으로 옮겨 붙은 것 같았다. 같은 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던 사람의 실수였을까, 혹은 페인트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색소가 묻은 옷을 바닥에 벗어 던졌던 것일까. 물티슈로 얼룩진 자리를 벅벅 긁으면서 짧은 상상을 해보았다.

 원룸은 캠퍼스에서 5분정도 거리로, 학교를 마주보고 있는 직사각형 모양 구역 안에 있다. 작지만 나름 대학 앞 동네라 학생이 혼자 머물기 좋은 방들이 주로 모여 있다. 지리를 잘 아는 사람들은 큰 길이 막힐 때마다 집 앞 골목으로 차를 몰고 들어온다. 자동차가 양방으로 다닐 수 있어 길이 자주 막히는 탓에 건물을 밀고 도로를 더 넓히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욱여넣듯 주차해놓은 차들 사이사이 보이는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점집도 많이 보인다. 뒷산인 천장산이 예로부터 신을 만나기 좋은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요즘에는 흔히 볼 수 없는 방앗간이나 건강원도 골목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 주황색 간판을 단 건강원에서는 매번 태어나서 처음 맡는, 흥미로운 냄새가 난다.

 

바닥에 있는 잉크 자국

 

내몰림

 그런데, 이사 온지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내가 곧 쫓겨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재건축 축하’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골목마다 걸린 것이었다. LH에서 지원하고 있는 ‘가로주택정비사업’이라는 재건축 사업이 이 동네에서도 시작되었다. 다른 재개발과 달리 구역을 세분화해서 소규모로 진행되기 때문에 더 빠르게 의견 수렴을 할 수 있고, 더 빠르게 공사를 진행할 수 있게 되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그럼 나도 더 빠르게 쫓겨나겠군…” 기사를 읽으면서 생각했다. 학교 앞 원룸촌, 결코 좁지 않은 이 직사각형 구역이 전부 다 재건축될 예정이라고 했다. 기사 하단에는 동네를 그린 평면도가 있었다. 나의 집은 1-2구역으로, 빠르게 재건축이 추진되고 있는 곳 중 하나였다. 주민 80%가 동의를 했다는데, 나의 동의 여부와는 관련이 없었던 것 같았다. 유튜브로 검색을 해보니 이미 방이동, 개포동 등 꽤 많은 동네에 가로주택이 들어서 있었다. 곧 무너질 것같은 빨간 벽돌 빌라가 허물어지고 필로티 구조 위에 대리석 타일이 대어진 깨끗한 빌라형 아파트가 지어진 모습을 보자니 마음이 편안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집값은 두 배 가까이 올라 조합원들은 2억원 가까이 되는 시세차익을 보았다.

 그 뒤로 골목을 지나다닐 때마다 새로운 내용의 현수막이나 대자보가 걸리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언제는 시공사를 확정했다는 내용이, 언제는 조합원 총회를 한다는 내용이 보였다. 하지만 집주인도, 통장도, 동장도 나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전월세 세입자는 이주비만 받을 수 있지, 제도상 이 사업과는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이곳에 오래 살았고, 이곳에 정을 붙였다 한들 저 멀리 강남에 사는 집주인보다 집에 대한 권리가 적은 것이다. 화가 났지만 생각보다 느리게 진행되고 있는 사업을 보며 안도했다. 다행히도 재건축이 되는데 대체로 5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내가 졸업할 때까지는 이곳에서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집 근처에 생긴 가로주택정비사업 추진대표 사무실
추진대표 사무실 벽에 붙어 있는 가로주택정비사업 설명서

 

 

허무는 건축

 한편 생각했다. 안도할 수 있을까. 안도해도 되는 것인가. 바닥에 그려진 물감 자국은 짧지만 꽤 많은 상상을 불러 일으켰다. 내가 들어오기 전에 살았던 사람. 내 다음, 또는 다다음에 이 집에서 살게 될 사람은 이 얼룩을 보면 어떻게 할까. 무슨 생각을 할까. 락스로 자국을 없애려고 할까, 카페트나 가구로 가려버릴까, 혹은 아싸리 그 위에 새로운 그림을 그릴까. 짧은 기간 동안, 정 붙이지 못한 채 머물러야 하는 이 불편한 원룸이 어쩌면 거대한 역사 안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집 바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의료기술이 발달하고, 효능 좋은 양약과 영양제가 개발되고 있는 지금, 골목 앞 건강원은 어디로 갈까. 녹용을 달이고, 어려운 이름을 가진 버섯을 슥슥 분류해 보기 좋게 말리는 기술자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마분지처럼 얇은 종이에 적혀 몇 대째 내려왔던 레시피는 이제 종잇장이 되는 것일까. 또 좁은 골목 사이사이 알록달록한 깃발을 걸고 있는 신당은 어디로 갈까. 적대와 경쟁으로 무장한 사람들 사이에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고 말문을 터주는 이 환대의 공간은 어디로 가게 될까. 매일 물을 떠 신을 향해 기도를 올리고, 제사상을 마련하는 사람들은 어디로 갈까. 무분별한 재개발의 문제는 나의 집 바닥에 묻어 있던 물감과 같은 사소한 역사들을 삭제한다는 데 있다. 골목마다 있는 신당들,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건강원, 야작 후 잠시 눈을 붙이는 휴식처가 보기 좋은 대리석 건물 밑으로 봉합되어 버린다.

 

석관동에 있는 신당의 간판이다.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한다는 것은 끊임 없이 다른 공간으로 내몰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난한 자들은 한 곳에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계속해서 주변부로 밀려난다. 일상을 일궈왔던 곳과는 먼 곳으로, 더 싸지만 위험한 곳으로 갈 수밖에 없다. 반복되는 이주 속에서 사람들은 안정적인 삶을 꿈꾸기 어렵다. 나를 보호해주어야 하는 집이, 나를 옥죄는 사슬이 되고 만다. 전세나 월세를 내며 머무는 사람들이 재건축 이후 받을 수 있는 돈은 이주비 몇 푼이 전부다. 더이상 집이 사는 공간, 이야기를 만드는 공간이 아닌 세상에서, 살기 좋은 건물을 새로 짓는 재건축의 본래 의미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재()건축이 아니라, 머물게 하고, 존재하게 만들고, 계속 있을 수 있게 해주는 재()건축이 무엇보다 필요하지 않을까. 덜컹거리는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겼다.

 

 

 돌곶이포럼 여인서 씀